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법정화폐다. 이는 기존의 지폐나 동전과 같은 실물 화폐의 전자적 대체물로서, 정부가 법적 효력을 보장하는 공공 신뢰 기반의 통화이다. 단순한 디지털 결제 수단이나 암호화폐와는 다르게, CBDC는 법정통화(Legal Tender)로서의 지위를 가지며,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 운영, 관리한다는 점에서 그 차별성과 중요성이 부각된다.
CBDC의 개념은 기존 통화체계와 디지털 기술의 융합이라는 거대한 전환점에서 출발한다. 현금 사용의 지속적인 감소, 암호화폐의 대중화, 지급결제 시스템의 효율성에 대한 요구, 그리고 통화정책 집행의 새로운 수단 모색 등은 각국 중앙은행이 CBDC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연구하게 된 주된 배경이다.
📌 1. CBDC의 필요성과 등장 배경
디지털 전환이 금융 시스템 전반에 걸쳐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현금 중심의 기존 통화 체계는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모바일 결제, 인터넷 뱅킹, 간편결제 수단의 확산은 화폐의 ‘물리성’보다 ‘접근성과 편의성’이 더 중요하다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중앙은행이 기존 통화 시스템을 보완하고 공공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 바로 CBDC라 할 수 있다.
특히,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 및 민간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정부의 통화주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페이스북(현 메타)의 리브라(Libra, 이후 디엠으로 명칭 변경) 프로젝트는 ‘글로벌 민간 화폐’의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보여주며 중앙은행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따라, 공공영역의 디지털 통화 수단 마련은 선택이 아닌 필수의 과제로 대두되었다.
또한, 금융 시스템의 포용성 확대 역시 주요한 동기다. 일부 국가에서는 인구의 상당수가 은행 계좌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중앙은행이 직접 제공하는 디지털 화폐는 ‘금융 접근성’ 측면에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 2. CBDC의 구조와 유형
CBDC는 운영 방식과 적용 대상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 (1) 소매형(Retail CBDC)
소매형 CBDC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하며, 일상적인 소비, 송금, 결제 등에 사용될 수 있는 디지털 현금으로 기능한다. 이는 우리가 현금을 사용하듯 디지털 형태로 물건을 사고,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수단으로, 사회 전체의 경제 주체들이 참여하는 구조다.
🔹 (2) 도매형(Wholesale CBDC)
도매형 CBDC는 금융기관 간의 결제, 청산, 담보 거래 등에 사용된다. 이 형태는 기존의 중앙은행-시중은행 간 결제 시스템을 디지털화하여 효율화하는 데 초점을 둔다. 대량의 자금이 실시간으로 처리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특히 지급결제의 속도, 투명성,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유리하다.
🔹 (3) 운영 모델
CBDC는 누가 화폐를 배포하고 거래를 처리하느냐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 직접 모델(Direct Model): 중앙은행이 직접 사용자와 거래한다. 운영의 일관성이 확보되나, 기술적 부담이 크다.
- 간접 모델(Intermediated or Two-tier Model): 중앙은행은 발행만 하고, 배포와 운영은 민간 금융기관이 담당. 현 금융 시스템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하이브리드 모델(Hybrid Model): 중앙은행이 발행 및 일부 기록 관리까지 담당하며, 민간은 사용자 응대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실용성과 안정성의 균형을 고려한 설계라 할 수 있다.
📌 3. 기술적 기반: 중앙화 vs 분산원장
CBDC 구현을 위한 기술은 대체로 두 가지 방향 중 하나를 따른다.
- 중앙화된 원장 시스템은 중앙은행이 모든 거래 데이터를 보관하고 통제한다. 이 방식은 전통적인 구조와 유사하여 효율적이지만, 단일 장애점(Single Point of Failure)이라는 보안상의 약점이 존재한다.
- 분산원장기술(DLT, Distributed Ledger Technology)은 블록체인과 유사하게 다수의 노드가 거래 정보를 공유하고 검증한다. 이는 투명성과 무결성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나, 처리 속도 및 확장성의 측면에서 도전 과제가 따른다.
중앙은행들은 기술적 효율성과 보안성, 확장성, 사용자 프라이버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최적의 구조를 설계하고자 한다.
📌 4. 국가별 추진 현황
현재 세계 각국은 CBDC 도입 여부를 두고 서로 다른 속도와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
🇨🇳 중국
중국은 가장 앞선 국가 중 하나로, 디지털 위안화(e-CNY)를 개발하고 다수의 도시에서 실제 사용을 실험 중이다. QR 코드 기반의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여 실생활에서 사용 가능하도록 설계하였다.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 기존 민간 결제 플랫폼과 경쟁하면서, 국가 주도의 지급결제 수단 구축을 목표로 삼고 있다.
🇪🇺 유럽
유럽중앙은행(ECB)은 디지털 유로(Digital Euro)의 가능성을 연구 중이다. 특히, 개인정보 보호와 통화정책 안정성 간의 균형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유럽은 다국가 통화 체계인 만큼, 법적, 기술적 조율이 중요한 과제다.
🇺🇸 미국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CBDC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MIT와의 협력을 통해 기술적 타당성 검토를 진행 중이다. 프라이버시, 사이버보안, 통화정책의 전파력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으며, CBDC의 도입 여부는 향후 수년간의 논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 한국
한국은행은 CBDC 연구 및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기술적 가능성과 정책적 함의를 점검하고 있다. 2021~2022년 사이에는 1단계 및 2단계 기술 테스트를 수행했으며, 금융기관과의 연동을 포함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실험하였다.
📌 5. 기대 효과 및 장점
CBDC가 실현될 경우 기대되는 주요한 효과는 다음과 같다.
- 지급결제 시스템의 혁신
보다 빠르고 저렴한 송금 및 결제 서비스 제공. - 금융포용성 확대
은행 계좌 없이도 디지털 화폐를 통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음. - 통화정책의 정밀성 제고
금리 조정, 통화량 관리 등을 실시간으로 반영 가능. - 화폐 발행 및 유통 비용 절감
지폐와 동전의 인쇄, 운송, 보관 등의 물리적 비용 감소. - 사설 암호화폐에 대한 대응책
정부가 신뢰를 담보하는 디지털 화폐로 민간의 불안정한 암호화폐에 대응 가능.
📌 6. 쟁점 및 우려사항
CBDC 도입에는 다음과 같은 우려와 쟁점도 존재한다.
-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
거래 내역이 중앙에 기록되면,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가 존재한다. 이에 따라 익명성 보장 기술이나 선택적 가시성 모델이 논의되고 있다. - 은행 시스템에 대한 충격
예금이 CBDC로 대거 전환되면, 시중은행의 자금조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는 금융 중개기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사이버 보안 및 기술 리스크
CBDC가 해킹되거나 기술적 오류가 발생할 경우, 국가 경제 전체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음. - 디지털 격차 심화
고령층, 저소득층 등 디지털 접근성이 낮은 계층은 배제될 가능성이 있다.
📌 7. 결론: 화폐의 미래, CBDC의 역할
CBDC는 단순히 기존 화폐를 디지털화하는 것을 넘어, 국가 경제의 기반 인프라를 전환하는 중대한 정책 도구다. 이는 향후 금융의 구조, 통화정책, 글로벌 통화 질서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포괄적인 변화로 해석된다.
CBDC는 아직 완전한 정답이 없는 열린 시스템이다. 각국은 자국의 금융환경, 기술 인프라, 법제도 구조에 따라 상이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자국 내 안정성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향후 10년간, CBDC는 세계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화폐 혁신이자 통화 정책의 실험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지금,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화폐 패러다임’의 서막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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